노아의 방주와 타이타닉

종교 2015. 2. 26. 18:24 by 잔명

 15  방주를 이렇게 만들어라. 길이는 300큐빗,* 너비는 50큐빗, 높이는 30큐빗이다. 16  방주에 빛이 들어오는 창*을 만들되 맨 위로부터 1큐빗으로 만들고, 방주 옆쪽에 입구를 내야 한다.+ 그리고 방주를 아래층과 2층과 3층으로 만들어라.

1큐빗은 통상적으로 44.5cm이다. (물론 이보다 더긴 큐빗 단위를 쓰기도 한다)

44.5cm로 계산 하면 길이 133.5미터 x 너비 22.3미터 × 높이 13.4미터 이다. 
길이는 타이타닉호의 약 절반에 해당한다. 

용적은 40,000 세제곱미터이지만 배수량은 타이타닉과 비슷할 것이다.
 

노아의 방주에 관해 좀더 알기를 원한다면 아래의 링크에서 자세한 점을 알 수 있다. 

‘쇠고기’와 ‘소고기’ | 쉼표, 마침표. 국립국어원 온라인 소식지

상식 2015. 2. 10. 19:08 by 잔명



항상 헷갈리던 소고기와 쇠고기 표준어를 찾아 보았다. 

결론은 '둘다 표준어' 이다. 

그리고 '쉼표, 마침표'는 사이트 이름인데 기억하기 쉽지 않지만 콘텐츠는 재미 있다. 
 


출처 - 쉼표, 마침표

 

      

“나는 오늘 쇠고기 먹으러 갈 거야.” 이처럼 ‘소고기’의 뜻으로 사용되는 ‘쇠고기’는 다소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소고기’와 ‘쇠고기’는 모두 표준어입니다. ‘쇠가죽’, ‘쇠기름’, ‘쇠고기’ 등도 모두 옳은 표현입니다.

 

 

 

표준어 규정에
‘쇠고기’에서 ‘쇠’는 ‘소+l’로 분석할 수 있는데, 옛말 ‘l’는 현대의 ‘의’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쇠’는 ‘소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소’라는 명사를 ‘고기’나 ‘가죽’ 등의 단어 앞에 붙여 사용하여 ‘소고기’, ‘소가죽’ 등의 형태도 널리 쓰이게 되었습니다. 표준어 규정 제18항에서는 이러한 점을 인정하여 ‘쇠-‘의 형태를 원칙으로 하되, ‘소-‘의 형태도 허용함으로써, 둘 다 표준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위의 내용은 국립국어원 온라인 국어생활종합상담실 ‘온라인 가나다’에 올라온 질문과 답변을 정리한 것입니다.


[펌]양심적 병역거부

종교 2015. 2. 9. 08:32 by 잔명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로마의 막시밀리아누스다. 서기 295년, 현재의 북아프리카인 로마 속주 누미디아에서 그는 기독교적 신념을 이유로 징집 명령을 거부했다. 그는 21살의 나이로 처형됐고 이후 가톨릭 성인으로 추존됐다. 현대적 의미의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혁명 이후 유럽 나라들에서 징병제가 도입되면서다. 19세기 중반부터 ‘양심적 거부’(conscientious objection)라는 용어가 군 복무 거부를 특정해 지칭하기 시작했고, 20세기 초부터는 전적으로 이 의미로 쓰이게 됐다. 1차 세계대전 때 영국에서만 1만6000여명이 징집을 거부했고, 이들에게는 비전투 임무나 대체복무의 기회가 주어졌다. 노르웨이(1900년), 덴마크(1917년), 스웨덴(1920년), 네덜란드(1922년), 핀란드(1931년) 등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일찍이 제도화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독일 헌법에 명시되는 등 수많은 나라로 확산됐다.


이 과정에서 유엔은 양심적 병역거부가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자유권 규약) 18조에 규정된 사상·양심·종교의 자유에 해당한다는 국제기준을 세웠다. 최근 들어선 기준을 더욱 강화하는 추세다. 2010년 이전에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국가안보 등의 사유로 제한할 수 있다고 봤지만, 2011년부터는 국가안보의 비상사태에서도 제한할 수 없는 절대적 권리로 승격시켰다. 최근 알려진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의 결정(2014년 12월8일)은 한발 더 나아갔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부과되는 징역형은 자유권 규약 9조가 금지하는 ‘자의적 구금’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비록 실정법의 외피를 쓰고 있을지언정, 정당한 권리의 행사를 처벌하는 것은 불법적 구금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이러한 국제기준의 진화는 예외 없이 ‘한국 사례’를 다루면서 이뤄졌다.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관한 전세계의 각종 문서에 우리의 후진적 현실이 빼곡히 인용되고 있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대체 복무에 대한 논의는 1970년대 부터 논의가 있었으나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로 인한 대체 복무 논의는 2004년에 있었다. 이미 10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논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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